
조용조용, 대면대면 평촌 중앙 마라톤 클럽
평촌 중앙 마라톤 클럽, 평중마. 처음엔 조금 조용하고, 서로 대면대면한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좋은 사람들 사이”가 되어 있는 곳입니다.
1. 세 분의 수문장
고문님, 하늘님, 회장님. 세 분만 떠올려도 왠지 든든합니다.
평중마는 운동 후 회식보다 달리기 자체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습니다. 그런데 예전 전성기 때는 운동 끝나고 “짠” 한잔하는 시간이 자연스러운 문화였다고 하더군요.
지금도 그런 시간을 마다하지 않으시지만, 초대 방식이 늘 같습니다.
“혹시 시간 되시는 분들은 같이 저녁 드시고요.”
거기까지만 말하고, 더 이상은 강요하지 않는 분위기. 그게 평중마입니다.
2. 토요일 러너에서 수요 정모 러너까지
맞벌이다 보니, 혼자 집안일을 할 와이프를 생각해서 수요 정모는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토요일 아침에만 참석했습니다. 그렇게 8개월을 지냈습니다.
그러다 삼막사 계곡에 입수하고 돌아오던 날부터, 어느새 수요일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 있더군요.
자주 뵙던 분들이었지만 그제서야 비로소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평중마 회원분들은 비슷합니다.
처음엔 조용조용, 조금은 거리감 있게 대면대면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로 “좋은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깊게 파고들지도 않고, 자연스러운 거리에서 천천히 알아가는 사이.
3. 첫 고구려 마라톤, 그리고 많아진 식구들
작년 고구려 마라톤은 제게 첫 풀코스 마라톤이라 기억이 또렷합니다. 회장님 차를 함께 타고 출발했는데, 하늘님이 조금 늦으셔서 이런 대화가 오갔죠.
회장님: “아, 그냥 갈 거야.”
하늘님: “다 왔어, 금방 가.”
도착하자 하늘님이 짐 보관 비닐을 구해 와 우리에게 비닐 옷을 하나씩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게 짱이야. 입고 뛰다가 급수대에서 버리면 완전 좋아.”
먼저 완주한 고문님은 차가 잠겨 밖에서 추위에 떨어 고생하셨고, 동마를 준비 중이던 마초님은 회장님 말씀대로 32km가 아닌 35km를 채워 들어오셨습니다. 꼬미노님은 출발 후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마주쳤는데, 한강 사진을 한가롭게 찍고 계셨습니다. (ㅋㅋ)
작년에는 6명이서 갔던 고구려 마라톤. 올해는 식구가 많이 늘었습니다.
- 리더 김종찬
- 대림 황종건
- 브라운 황율민
- 정팀 정화영
- 꼬미노 권혁훈
- 모닝빵 허성진
- 모드리치 박흥수
- 여름하나니 마희숙
- 마초 백민기
- 준이현이 이상미
- 주봉 이주봉
- 하늘 장정현
- 배네 정재교
- 신입 황연경
이렇게 다 함께 “5, 4, 3, 2, 1, 출발!”을 외쳤습니다.
4. 대회 당일 아침, 이유 없는 긴장
알람을 넉넉히 맞춰두고 잤는데, 갑자기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알람 소리 못 들은 거 아니야?’
핸드폰을 보니 알람은 아직 한참 남았는데 다시 잠이 오지 않습니다. 그냥 일어나 파워젤과 크림픽스를 챙겼다가, 부피 때문에 상자를 뜯고 지퍼백으로 갈아 넣습니다. 뭔가 빠뜨린 게 있는 것 같아 마음 한켠이 계속 불안했습니다.
운동복 바지 위에 바지를 하나 더 입고, 거실 불을 끄고 어두운 거리로 나서며 잠깐 생각합니다.
“아…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범계역에 도착해 한 분 두 분 회원님들을 만나면서 외로움은 반으로 줄어들지만, 몸은 아직 덜 깬 것 같고 머릿속은 계속 복잡합니다.
‘겉옷을 벗고 뛸까, 입고 뛸까?’
‘보관소에 옷을 맡기고 기다리면 춥지 않을까?’
‘화장실은 괜찮겠지?’
그렇게 자양역에 도착합니다.

대회장에 가까워질수록 화려한 복장의 러너들이 모여들고, 그 속에 섞이다 보면 걱정은 어느새 “해야 할 일”이 되고 몸과 마음은 출발만을 향해 맞춰집니다.
회원들과 “화이팅!”을 외치고 각자 페이스에 맞게 출발선으로 나아갑니다. 화려한 복장, 테이핑, 각양각색의 신발을 보다 보면 괜히 주눅이 들기도 합니다.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느린 템포, 빠른 템포 사이에서 몇 번이나 바꾸다 결국 느린 템포로 맞추며 다짐합니다.
“초반엔 천천히 가자. 몸이 풀리면 그때 조금씩 당기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마트워치를 켭니다.
“5, 4, 3, 2, 1, 출발.”

5. 코스 위에서 마주친 얼굴들
① “저렇게 날아다니면 어떤 기분일까”
지신제 마라톤은 지역 클럽이 많이 참가해서인지 전체적인 수준이 꽤 높은 편입니다. 1km는 6분 31초, 3km까지는 6분 페이스로 달리는데도 거의 대부분의 러너들이 제 앞에 있었습니다.
‘이러다 너무 늦는 거 아닌가?’ 걱정하고 있을 때 반대편에서 옷자락이 바람에 펄럭이는 러너들이 날아오듯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렇게 날아다니면 어떤 기분일까.”
② 2:00 페이스를 이끄는 모닝빵님
어느새 페이스는 5분 30초로 올라가 있었고, 7km 지점쯤 2:00 풍선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페이스 메이커 옆에서 모닝빵님이 당당하게 달리고 계셨습니다.
“모닝빵님도 이제 실력이 많이 늘었구나.” 괜히 페이스에 방해될까 봐 조용히 옆을 지나쳤습니다.
③ 여름하나니님의 “화이팅”
반환점을 돌고 나오는데, 아까는 가까워 보였던 급수대가 이번엔 멀게 느껴집니다. 간단한 음료 두 컵으로 허기를 달래고, 짧게 스트레칭을 한 뒤 다시 달리기 시작합니다.
관성 때문인지 내 다리가 아닌 것 같은 느낌으로 달리고 있을 때, 평중마 싱글렛을 입고 여유 있게 웃으며 “화이팅!”을 외치는 러너를 마주쳤습니다.
얼떨결에 고개 숙여 인사하고 지나갔는데, 나중에 보니 여름하나니님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도 코스에서 만나는 러너들에게 “화이팅!”을 더 자주 외치게 되었습니다.
④ 선글라스 브라운 형님의 한마디
대회 신청 당시엔 부상으로 10km도 못 뛰는 상태였고, 몇 달 지나 그나마 괜찮아졌지만 “하프는 너무 약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계속 따라다녔습니다.
대신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마지막 1km만큼은 힘껏 달려보자. 이마저 안 하면 완주하고도 찜찜할 거다.”
마지막 1km, 너덜너덜한 다리를 최대한 들어 올리고 팔을 크게 젖히며 있는 힘껏 달렸습니다. 골인지점이 도무지 가까워지지 않는 것 같고,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칩니다.
겨우 골인선에 들어서는 순간, 선글라스를 쓴 브라운 형님이 나타나 말했습니다.
“어, 잘했어요^^”
그 짧은 한마디가 이상하리만큼 크게 위안이 되었습니다.
6. 겨울, 모닝빵님의 사랑채
농번기가 지나 한가해진 동네 아재들은 매서운 바람을 피해 동네 갑부(?) 모닝빵님의 사랑채에 자연스럽게 모입니다.
고문님이 말씀하십니다.
“정팀, 빈손으로 가기 뭐하니 뭐라도 사서 같이 먹자.”
일 끝난 아재들은 한잔하며 수다를 떨고, 봄 농사 준비로 쟁기질에 바쁜 주봉 형님은 문을 열고 들어와 말합니다.

주봉 형님: “나만 왕따인 거야? 다들 어디 갔나 했네.”
모두: “논은 다 갈으셨어요?”
주봉 형님: “그냥 가볍게, 큰 욕심 안 내고 3시간 20분만 하고 왔지 뭐.”
모닝빵님의 사랑채가 닫히면, 회장님과 꼬미노님은 들판에 앉아 세참을 드시고, 하늘님은 일이 늦게 끝나 혼자 세참을 하십니다.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결국 모두 동마 대비 모내기를 잘 마쳤습니다.

7. 한 번 들어서면 빠꾸하기 힘든 마라톤
“운동할 시간이 없어서…” 나이가 있다 보니 이 말이 핑계라는 걸 너무 잘 압니다. 그래서 본인에게도 큰 위안이 되지 않는 변명입니다.
짧은 거리로 시작했던 괴로운 달리기가, 완주 후에는 뿌듯함으로 변합니다. 건강 때문에 시작했던 달리기가 어느 순간부터는 마음속 괴로움, 복잡함, 우울함을 누그러뜨려 주는 걸 알게 되어 계속 달리게 됩니다.
대회에 나가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달린다고?”
그리고 자연스럽게 욕심이 생깁니다.
“다음에는 나도 조금 더 잘 달려보고 싶다.”
지금보다 조금 더 먼 거리.
지금보다 조금 더 빠른 페이스.
이렇게 한 번 마라톤 대회에 발을 들여놓으면, 정말 빠꾸하기 힘든 세계가 되어 버리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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