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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달리기

"관악산 둘레길 트레일 러닝 완주 — 100km 울트라 전, 나에게 묻다"

Sub 4 실패, 두 번의 부상, 그리고 두 번째 울트라 100km 도전 전 마지막 시험대. 관악산 둘레길 31km 총 고도 1,700미터를 완주하며 깨달은 것. 달리기는 속도가 아니라 버티는 운동이다.

 

거리
31.46km
총 시간
5:45:18
총 고도
1,700m
평균 페이스
10:58/km

 

I. Sub 4도 못한 나

서울 마라톤 완주자의 절반이 Sub 4라고 한다.
마라톤에 입문하면 처음엔 이런 생각을 한다.

'풀코스까지는 무슨…'

그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 바뀐다.

'나도 언젠가는 풀코스를.'

동호회 사람들과 같이 뛰다 보면 어느 순간 목표가 생긴다.
Sub 4.

나도 그랬다.

부상도 없었고, 페이스도 나쁘지 않았고,
첫 풀코스에서 은근히 Sub 4를 기대했다.

 

하지만 32km 지점.

다리가 무너졌다.
걷기 시작했다.
겨우 5시간 안에 들어왔다.

 

이후 6개월.
한의원을 들락날락했다.

달리지 못하는 시간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8개월쯤 지나 회복됐고,
설욕전 대회를 신청하려 했다.
하지만 "마감".

 

그때 처음 알았다.
대회가 없으면 훈련도 흐트러진다.

한 달 동안 달리기가 시들해졌다.

 

그래서 덜컥 신청했다.

100km 울트라.

100일 전부터 긴장하며 준비했다.
삼막사 언덕도 달리며.

 

하지만 첫 100km 역시나 쉽지 않았다.

장경인대, 발바닥 부상으로
마지막 20km는 숫자를 세며 겨우 완주했다.

또 몇 개월 부상.

 

얼마 전 겨우 풀코스를 4시간 24분에 완주했다.

그전까지는 '조금 더 빨리 달릴 수 없을까'가 고민이었다.

 

하지만 부상 이후 목표가 바뀌었다.

다치지 않고 목표 거리를 완주하기.

부상당하면 실력은 거꾸로 간다.
꾸준히 달리는 사람이 실력이 늘고,
꾸준히 달리려면 다치지 말아야 한다.

 

II. 두 번째 100km 도전

부상이 완전히 낫기도 전에
청남대 울트라 100km를 신청해 놓았다.

'그때쯤이면 괜찮겠지.'

 

요즘 달릴 때마다 무릎 상태를 점검한다.
지난 대회 이후 마음 편하게 다리를 놓고 달린 적이 없었다.
항상 하체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약 2주 전,
처음으로 다리를 터벅터벅 놓고 달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 이제 다리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구나.'

 

4월 11일. 청남대 울트라 100km.

'조금은 괜찮겠지'와
'이러다 또 다치면 어떡하지' 사이에서
토요일 밤 잠자리에 들었다.

 

울트라 하시는 분들이 으레 연습하는 코스가 있다.

관악산 둘레길이고,
이 코스를 부상 없이 뛰면
100km 대회도 크게 무리 없을 거라는 통념.

 

그 긴장감을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III. 새벽 6시, 안양 종합운동장

알람이 두 번 울렸다.

'그냥 잘까.'

잠깐 고민하고,

막내가 지각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서둘러 나왔다.

 

나 포함 네 명.
75년생인 내가 제일 젊다.
나머지 세 분은 모두 나보다 열 살이 많다.
그리고 다들 나보다 잘 달린다.

다 같이 사진 한 장 찍고.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앞으로 닥칠 인고의 시간을.

산 초입까지 걸어가며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아 계속 걷고 싶다.
시작하는 게 겁난다.

 

그러는 사이 회장님이 말씀하셨다.

"정팀이 제일 느리니까 정팀 페이스에 맞출께,
정팀이 선두에 서요."

느리더라도 뛴다.
뛸 수 없는 경사만 걷는다.
나머지는 뛰는 시늉이라도 한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관악산 둘레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IV. 오르막을 걱정하며 내리막을 달린다

바닥을 보다가 앞을 본다.
경사 끝이 보이길 바란다.
끝이 안 보이면 다시 바닥만 본다.

 

오르막에서는 빨리 끝나길 바라며 올라가고,
내리막에서는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내려간다.
평지에서는 다시 오르막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트레일 러닝은
오르막을 걱정하며 내리막을 달리는 운동인거 같다. 나한테는,,,

1시간 20분쯤 됐을까.

"여기가 과천 청사예요."

안양에서 과천까지 산으로 왔다.
차로만 다니던 길을 두 다리로 넘어온 거다.
신기했다.

이 느낌은 서울 초입인 사당 넘어가는 고개에서도 들었다.

차로 수백번 왔던 이 길을
두 다리로 오니,,, 참 신기하네.

 

사당을 통해 다시 관악산 둘레길로 접어들었다.

이제 서울대로 향하는 길이다.

 

V. 버스 타고 싶다

 

서울대에 도착했다.
대략 절반이다.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었다.
20분.

잠깐이지만 앉아서 먹고 나니

'아 그냥 여기서 버스 타고 집에 가고 싶다.'

 

희망과 다르게 회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이제 슬슬 출발하시죠."

아… 또 인고의 시간이 시작되는구나.

 

VI. 망해암

중반부에 들어섰다.

가야 하는 길이 줄어든다는 생각에 잠시나마 마음속에 여유가 돌기도 한다.

그렇게 아침보다 밝은 모습으로 사진 한 장 담고,

 

바닥만 보고 달리다 문득 고개를 드니
봄이 마중 나와 있었다.

마른 가지 사이로 진달래가 보이고, 진달래가 쭁님을 보고, "나좀 찍어줘~~" 그렇게 쭁님이 진달래 부탁을 들어주고,

잠깐 멈춰서 본다. 

달리다 보면 가끔 이런 순간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보게 되는 순간.

 

다리가 무거워졌다.
오르막이 보일 때마다 속으로 빌었다.

회장님, 제발 걸어주세요.

 

다행히 후반부 오르막은 걸었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미 무거워진 다리로
빠르게 걷는 것도 인내로 버티는 상태였다.

 

관악산 둘레길에 사람들이 많았고
몇몇 등산객들이 물었다.

"오늘 산악 마라톤 대회 있어요?
뛰는 사람들이 많네요."

서울을 빠져나와 드디어 안양 근방에 도착했고,
이제 익숙한 안양예술공원이다.

회장님께서 한마디 하셨다.

"자, 이제 마지막 올라가는 길이에요.
망해암까지."

올라가기 전까지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도저히 뛸 수 없는 경사였다.
걷기 시작했는데 끝이 보이지 않았다.

다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두 팔을 무릎에 짚었다.
잡을 수 있는 나무는 잡았다.

 

그러다 다시 생각했다.

훈련이니까. 두 팔은 쓰지 말자.

또 올라갔다.
또 짚었다.
또 다짐했다.
그게 계속 반복됐다.

 

'앞에 가시는 두루미님이 멀어지는 걸 두려워 하면서,,,' 

 

망해암.

평소에 가끔 경치가 좋아 지나치던 곳이었다.

그 경치 좋은 곳이

'아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
그냥 차 타고도 여기는 오지 말자.'

 

VII. 흐느적거리는 다리

비봉산.
마지막 오르막이었다.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회장님 제발 뛰지 마세요.'

 

역시 기도는 독실한 신자에게만 응답하는 거 같다.

더 이상 명령을 듣지 않는 다리에게
강하게 신호를 보냈다.

뛰어. 뛰어.

학운공원.
꼴찌로 도착했다.

 

열 살 위 선배님 세 분이
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 대단들 하시다.
열 살이나 많으신데.
아 난 뭐지…

 

출발했던 지점, 여정의 끝까지 800미터.
발바닥도, 발톱도, 무릎도 아팠다.

그래도 뛰었다.

도착.

 

하이파이브.

그리고 바로 한마디가 나왔다.

"아, 이걸 왜 하는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왜 뿌듯할까

밥도 먹기 싫을 정도로 힘들었다.
막걸리 한 잔 마시고 나서야 몸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때 계속 드는 생각.

왜 이렇게 뿌듯하지?

편하게 달린 날보다
힘들게 버티고 끝까지 간 날이
왜 더 뿌듯할까.

 

아마 달리기는
속도의 운동이 아니라
버티는 운동이라서 그런 것 같다.

내 한계를 한 뼘 더 넓혔다는 확신.
그게 뿌듯함의 이유인 것 같다.

 

이번 관악산 둘레길 완주를 하며,

잘하면 청남대 울트라도
부상 없이 완주할 수 있겠다.

 

오늘 달리기는
100km를 향해 가는 중간 시험.
하나 통과했다.

 

나만의 대회를 무사 완주한 오늘 나!!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