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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중에

"내가 언제 그랬어?" 우기는 상사

I. 20인 사업장, 대리 2년 차

소기업에 다니면 좋은 점이 하나 있다.
실무 경험이 빠르고, 그만큼 성장 속도도 빠르다는 것이다.

 

대리 2년 차.
해외 대리점 상담도 직접 하고, 계약 조건도 스스로 협의한다.

 

계약이 성사되면
TV에서나 보던 ‘비즈니스맨’이 된 것 같은 자긍심도 들고,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확신 덕분에 일에 대한 만족도도 높았다.

 

그렇게 거침없이 실무를 해가던 어느 날,
항상 나를 잘 챙겨주던, 사람 좋기로 소문난 부장님께
의외의 말을 듣게 된다.


II. “이건 왜 이렇게 한 거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
정확히 어떤 사안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건,
혼자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었고,
부장님께 구두로 보고하고 확인을 받은 뒤
외부에 답변을 보냈다는 점이다.

 

그렇게 1주일쯤 지났을까.
갑자기 부장님이 물었다.

“정대리, 이건 왜 이렇게 한 거야?”

 

“어… 부장님께 말씀드렸고,
그렇게 진행하라고 하셔서 답변 나간 건데요.”

 

그러자 돌아온 말은 의외였다.

“아니, 내가 언제 이렇게 하라고 했어?”

 

“어… 그때 그러셨는데요.”

 

순간 부장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니야. 내가 그런 얘기 할 리가 없고,
그때 얘기한 거 똑똑히 기억나는데 왜 자꾸 우겨?”


 

III. 내적 갈등

그 사안은
담당자인 내가 혼자 판단할 수 없는 일이었고,
꽤 오래 고민하다 부장님께 여쭈어본 건이었다.

 

그래서
내 기억이 틀렸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솔직히 이런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부장님, 제가 담당자고
한참 고민하다 여쭤본 건인데
그걸 제가 어떻게 잊겠어요.”

 

하지만 꾹 참았다.

 

여기서 더 말하면
좋았던 관계가 깨질 수도 있고,
아랫사람이 대드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었다.

 

‘그래, 사람이 완벽할 순 없지.’
‘누구나 기억이 틀릴 수는 있는 거야.’

 

스스로를 설득해보려 했지만,
억울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그 일은 오래 마음에 남았다.


IV. 근거를 남기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답변 나가기 전에
메일이나 문자라도 남겨뒀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그 이후부터 방식을 바꿨다.

 

구두로 협의한 내용은
간단하게라도 메시지로 남겼다.

“말씀 주신 대로 이렇게 진행하겠습니다.”

 

결정이 필요한 사안은
요약과 함께 이렇게 보냈다.

“이렇게 답변하려 합니다.
검토하시고 의견 부탁드립니다.”

 

확인 메일을 받은 뒤에만
업무를 진행했고,
모든 메일은 나중에 찾기 쉽게 정리해 두었다.


V. 근거의 힘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비슷한 상황이 다시 발생했다.

“정대리, 이건 왜 이렇게 된 거지?”

 

“어, 부장님께 메일로 확인받고 진행한 건데요.”

“내가 이렇게 얘기했을 리가 없는데…”

 

“저도 기억이 가물가물해서요.
예전에 드린 메일이 있는지 찾아볼게요.”

 

그리고 5분도 안 돼
관련 메일을 찾아 부장님께 전달했다.

 

그제야
본인 기억이 틀렸다는 걸 인지하신 듯했다.

 

그 이후로는
내가 맞다고 하면 더 이상 강하게 우기지 않으셨고,
굳이 필요 없다고 하시면서도
결국엔 근거를 확인하셨다.


VI. 근거 메일의 효과

본인 기억력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
특히 그런 사람이 윗사람일 경우
이 한마디면 모든 상황이 끝난다.

“내가 언제 그랬어?”

 

같은 팀이든, 협업 부서든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본인 기억이 틀릴 수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되면
,
그 이후로는 쉽게 말을 바꾸지 못한다.

 

비슷한 상황이 다시 와도
말로 설왕설래할 필요가 없다.

“제 기억이 틀릴 수도 있으니,
예전에 정리해서 보내드린 메일이 있는지
한번 찾아볼게요.”

 

이 한 문장으로
상황은 조용히 정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