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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중에

넥서스가 결국 운동화를 신게 만들었다

 

AI가 궁금해서 펼친 책인데, 결국 운동화를 신게 만들었다. 《넥서스》를 읽으며 이야기, 권력, 알고리즘을 지나 다시 오늘의 현실로 돌아온 기록.

그래도 운동화를 신는다

이제 《넥서스》 후반부에 들어왔다.

분량이 있다 보니 읽으면서 생각도 많아지는 거 같다.

 

첫 번째 글에서는 결국 운동화를 신었다.

(혹시 첫 번째 글을 읽지 못했다면, 「나는 왜 달리는가」를 먼저 읽어도 좋겠다.)

 

그런데 이번 글에서도 어김없이 운동화를 신게 만드는 책이다.

 

참 이상한 책이다.

AI가 궁금해서 펼쳤는데, 문자와 종교를 지나 민주주의와 전체주의를 돌아보고, 알고리즘과 권력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결국 다시 나 자신과 지금 살아가는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처음에는 AI가 궁금했다.

AI가 인간의 일을 얼마나 대신하게 될까.

AI 시대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래서 책을 펼쳤다.

 

그런데 책은 좀처럼 AI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았다.

대신 하라리는 아주 먼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문자와 종교. 제국과 화폐. 민주주의와 전체주의.

처음에는 답답했다.

'AI 이야기하려면 그냥 AI 이야기하면 되지. 왜 이렇게 서론이 길지?'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다. 그 서론이 본론이었다는 것을.


인간은 이야기를 만드는 동물이었다.

돈은 종이에 불과하지만 모두가 믿기에 돈이 된다.

국가는 지도 위의 선일 뿐이지만 모두가 믿기에 국가가 된다.

종교는 신에 대한 이야기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 왔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현실보다 강했다.

때로는 사람을 살리고, 때로는 사람을 죽였다.

십자군 전쟁도 그랬고, 홀로코스트도 그랬다.

역사책에서 보면 "그 시대는 그랬다"고 한 줄로 정리된다.

 

근데 그 한 줄 안에 누군가의 평생이 있다.


나는 94학번이다.

우리보다 조금 앞선 선배들은 독재에 맞서기 위해 음지에서 몰래 책을 읽었다.

맑스주의, 고리끼의 《어머니》.

노동자를 해방하겠다는 뜨거운 서사 앞에 많은 이들이 청춘을 던졌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군사 독재와 싸우기 위해 가져온 무기가 스탈린주의라는 또 다른 독재의 사상이었다.

그때는 왜 그 모순을 보지 못했을까.

 

아마도 음지의 지식이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한다.

어둠 속에서 몰래 배운 지식은 반박과 검증의 기회를 갖지 못한다.

한쪽만 보면 그게 전부처럼 보인다.

그렇게 음지의 지식은 절대 신념이 된다.


지금은 어떤가.

인터넷이 생기면 진실이 드러나고, 정보가 많아지면 세상이 더 좋아질 거라 믿었다.

 

그런데 역사는 그렇게 흘러오지 않았다.

인쇄술은 성경을 퍼뜨렸지만 마녀사냥도 퍼뜨렸다.

인터넷은 민주주의를 확장했지만 가짜뉴스도 확장했다.

알고리즘은 정보를 연결했지만 자극적인 뉴스를 지나치게 증폭한다.

 

과거의 선배들은 금서를 구하러 음지로 들어갔지만,

이제는 침대에 누워만 있어도 알고리즘이 알아서 우리를 음지로 안내한다.

더 정교하게. 더 개인화되어. 더 중독적으로.

 


그리고 이제 AI가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이야기는 인간이 만들었다.

서툴렀고, 실수도 많았지만 결국 사람이 결정했다.

 

하지만 지금은 인간과 AI가 함께 이야기를 만든다.

조금 더 있으면 AI가 혼자 이야기를 만들지도 모른다.

더 빠르게. 더 정교하게. 더 설득력 있게.

 

우리 아이들은 그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배우게 될 것이다.

적어도 우리는 결정의 주체였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어떨까.

점점 더 많은 선택을 알고리즘에게 맡기며 살아갈지도 모른다.

무엇을 볼지, 무엇을 믿을지, 누구를 만날지, 심지어 무엇을 두려워할지까지.

 

그때에도 인간은 여전히 결정의 주체일 수 있을까.


하라리는 말한다.

"기술은 단지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 뿐이며, 어느 쪽으로 갈지는 우리에게 달렸다."

세상이 어떻게 굴러갈지 나는 알 수 없다.

거대한 권력의 흐름을 내가 바꿀 수도 없다.

우주의 크기를 생각하면 개인의 삶은 너무 작아 보인다.

역사의 흐름 앞에서 오늘의 고민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결국 내가 살아가는 곳은 거대한 우주도, 역사의 한 획을 차지하는 긴 시간도 아니다.

그냥 지금 여기 짧은 순간의 현실이다.


아마 내일도 세상은 시끄러울 것이다.

AI에 대한 뉴스가 쏟아질 것이고, 누군가는 분노할 것이고, 누군가는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이야기들이 만들어내는 세상 속에서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때로는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릴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안다.

 

어떤 세상이 오더라도, 와이프와 아이들이 있는 그 집.

내가 지켜야 할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운동화를 신는다.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든, 오늘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