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혁명은 왜 노동자를 지키지 못했을까요. 그 이유를 찾다 보니, 지금 AI 시대와 다른 점이 하나 보였습니다.
AI 시대 생존기 시리즈 | 28편
왜 산업혁명은 대량 실업자를 방관했을까? AI 시대, 우리도 결국 그렇게 되는 건 아닐까?
AI 전문가들은 기술을 설명합니다.
사회학자들은 AI가 가져올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저는 결국 하나만 궁금했습니다.
과연 내 일자리는 지킬 수 있을까?
실업 대신,
모두 조금씩 덜 일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을까?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산업혁명을 이야기했습니다.
27편에서 봤듯이
산업혁명 초기에는 오히려 일자리가 늘었습니다.
하지만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기 시작한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새 공장으로 들어간 사람은 5%도 되지 않았고, 나머지는 대부분 밀려났습니다.
어떤 사람은 임금이 반토막 나도 버텼고,
어떤 사람은 구빈원으로 갔고,
어떤 사람은 나라를 떠났고,
어떤 사람은 그냥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지컬 AI가 본격화되면, 우리도 결국 그렇게 되는 건 아닐까?
그때처럼, 필요 없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그래서 이번에는
산업 혁명 시대 왜 일반 시민들은 비참한 상황에 내 몰렸는지? 그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 ● ●
1. 왜 노동자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까?
처음에는 노동자들에게 힘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니,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습니다.
노동조합 은 사실상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투표권 도 거의 없었습니다.
당시 선거권은 일정 규모 이상의 토지나 재산을 가진 남성들에게만 있었습니다.
전체 인구의 3~5% 뿐이었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여성, 가난한 사람들은 국가의 방향을 결정할 권리조차 없었습니다.
언론 도 대부분 정부와 부유층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 목소리가 사회 전체로 퍼질 방법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설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힘이 없었다고 해서, 왜 그렇게 쉽게 버려질 수 있었을까?
2. 정부는 왜 노동자를 지키지 않았을까?
저는 오히려 정부가 가장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조금만 나섰다면, 그렇게까지 많은 사람이 밀려나지는 않았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기록은 정반대였습니다.
정부는 노동자를 보호하기보다, 군대를 보내 시위를 진압했습니다.
왜였을까요?
당시 영국은 프랑스와 전쟁 중이었습니다.
공장은 국가 경쟁력이었습니다.
공장이 멈추는 것은 노동자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가 약해지는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노동자보다 산업을 먼저 지켰습니다.
그런데도 제 머릿속에는 같은 질문이 남았습니다.
왜 노동자는 이렇게까지 쉽게 뒤로 밀려날 수 있었을까?
● ● ●
3. 그리고 결국 이유를 찾았습니다
자료를 계속 보다 보니,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정부가 노동자를 외면했다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정부가 노동자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산업혁명이 왜 그렇게 비참했는지, 처음으로 이해됐습니다.
그 시대 노동자는, 국가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시민이 아니었습니다.
법적으로 사람이 아니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국가가 우선해서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선거권은 일부 재산을 가진 남성에게만 있었습니다.
국가가 먼저 바라본 것은 평범한 노동자가 아니라, 생산수단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봉건시대에는 지주였고, 산업혁명에서는 공장주였습니다.
기업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 영국 기업은 국내 노동자보다 해외 시장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국내 노동자가 가난해져도, 식민지와 해외 시장이 계속 물건을 사주었습니다.
게다가 농촌에서도 먹고살 길을 잃은 사람들이 계속 도시로 몰려왔습니다.
공장 밖에는 남자도, 여자도, 아이도, 일하려는 사람이 넘쳐났습니다.
한 사람이 떠나면, 다음 사람이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정부의 계산
국가가 지켜야 할 대상은 생산수단을 가진 사람 — 봉건시대엔 지주, 산업혁명엔 공장주.
기업의 계산
국내 노동자보다 해외·식민지 시장. 농촌에서 사람은 계속 밀려오니, 한 명이 떠나도 다음 사람이 대신함.
국가는 노동자를 지켜야 할 시민으로 볼 이유가 없었습니다.
기업은 노동자를 붙잡아야 할 소비자로 볼 이유가 없었습니다.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바꿀 수 있는 노동력이었기 때문입니다.
산업혁명이 사람을 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는 사람을 지킬 이유가 없었던 시대였습니다.
● ● ●
4. 그런데 지금 AI 시대는 조금 다릅니다
여기서 저는 기업이 더 착해졌다고, 정부가 더 정의로워졌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 도덕론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기업도 결국 생존이 먼저입니다. 정부도 결국 생존이 먼저입니다.
그래서 저는 도덕보다 구조를 믿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구조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지금의 노동자는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시민 입니다.
실업이 늘어나면 정부는 시민의 지지를 잃습니다.
또 지금의 노동자는 기업의 중요한 소비자 이기도 합니다.
생산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비자가 사라지면, 그 소비에 의존하는 기업도 함께 흔들립니다.

그래서 AI가 막 시작된 지금부터 기본소득, 재교육, 노동시간 단축, 로봇세 같은 논의가 세계 곳곳에서 동시에 시작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 ●
정리하면
27편에서는 산업혁명이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를 살펴봤습니다.
이번에는 왜 그런 결과가 만들어졌는지를 찾아봤습니다.
처음에는 노동자를 의심했습니다. 그다음에는 정부를 의심했습니다. 그리고 기업을 의심했습니다.
끝까지 따라가 보니, 결국 산업혁명과 지금의 가장 큰 차이는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이었습니다.
| 산업혁명 | AI 시대 | |
| 노동자의 위치 | 비용 | 비용이면서 시장 |
| 정부에게 | 표를 의식할 필요 없음 | 시민의 선택을 받아야 함 |
| 기업에게 | 해외시장으로 대체 가능 | 소비자를 잃으면 시장도 잃음 |
그때 사람은 비용으로 계산됐습니다.
지금 사람은 비용이면서, 동시에 시장이기도 합니다.
산업혁명 때는 노동자를 지키지 않아도 정부도, 기업도,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정부는 시민의 삶이 무너지면, 결국 시민의 선택을 다시 받아야 합니다.
기업은 소비자가 무너지면, 결국 자신의 시장도 함께 무너집니다.
산업혁명은 사람을 지킬 이유가 없던 시대였습니다.
지금은 사람을 지키는 것이, 정부와 기업 자신의 생존이 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 시민을 지켜야 할 구조적 이유가 있다고 해도,
이 사실만으로 AI 시대를 낙관하기는 이른 거 같습니다.
지금 회자되고 있는 기본소득, 재교육, 노동시간 단축, 로봇세등이 법제화되기까지는 아직 안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음 편에는, 실제로 그 법제화가 — 미국, 유럽, 그리고 한국에서 어느정도까지 논의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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