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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달리기

나는 왜 달리는가

나는 왜 달리는가

요즘 《넥서스》를 읽고 있다. 유발 하라리는 말한다. 인간은 이야기를 만드는 동물이라고. 돈도 이야기다. 국가도 이야기다. 종교도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믿으면, 그 믿음은 사실이 되고, 결국 현실이 된다고 한다.

책을 읽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매일 하는 걱정도 이야기가 아닐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 가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생각속으로 찾아올 때가 있다.

"앞으로 수입이 없어지면 어떡하지?"

그 문장 하나로 시작된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엄청난 불안 속으로 밀어넣는다. 그런 날은 집에 가기가 무서워진다. 그 불안이 와이프한테까지 전염되고, 혹시 얘들도 이런 나의 성격을 배워서 나중에 힘들어 할까봐.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눈앞에 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당장 굶고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난 것도 아니다.

그런데 황금보다 비싸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금'이라는 시간이, 존재하지도 않는 미래의 허구 속에서 속절없이 낭비된다.

 

나는 문득 문득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한번 시작하면 끝날 것 같지 않은 그 이야기를, 그것도 아주 부정적인 방향으로.


넥서스를 읽다가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왜 종교는 그렇게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 살아남았을까? 나는 종교인이 아니다. 쉽게 믿지 못하는 편이다.

하지만 인정해야 할 것이 있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 중에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인 사람들이 있다. 똑같은 상황인데도 그분들은 좀 더 평안하고 큰일 아니라는 듯이 대처한다. 하지만 그분들도 아프고, 실패하고, 두려워한다. 다만 자신의 두려움과 괴로움을 종교라는 거대한 이야기 속으로 풀어 담대하게 극복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걸 보며 생각했다. 내가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미래를 믿으며 괴로워하는 것보다, '설령 확신할 수 없더라도 나를 안정시키는 종교라는 이야기 속에 사는 게 더 현명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인간은 사실이 아니라 의미로 산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의미가 허구에서 나왔다는 걸 아는 이상, 나는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가. 상상 속의 미래 때문에, 오늘을 이렇게 낭비해야 하는 건가?


그러다 달리기에 대한 생각을 해 보았다.

내 인생에는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걱정이 많아진다. 불안이 커진다. 생각이 꼬리를 문다. 그런데 달리고 나면 이상하게 괜찮아진다. 상황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통장 잔고도 그대로고, 미래도 여전히 불확실하다. 그런데 마음만은 달라진다.

예전에는 단순히 운동 효과라고 생각했다. 근데, 이젠 조금 다르게 보인다. 달리기를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게 아니라, 원래의 나로 돌아오는 것이다.

 

어느 날 문득 AI에게 물어봤다.

"왜 어떤 사람은 별 걱정 없이 사는데, 나는 이렇게 걱정이 많을까?"

몇 가지 논문을 찾아보고 AI가 내놓은 답변은,

"뇌에는 기본값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혼자 돌아가는 상태. 걱정이 많은 사람은 그 기본값이 불안 쪽으로 세팅되어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 뇌의 기본값은 불안 쪽으로 세팅된 거였고, 달리기는 그것을 고쳐주는 것이 아니라, 내 뇌를 정상 범위로 되돌려 놓았던 것이다.

혈압약을 먹고, 당뇨약을 먹으면서 자기 몸을 관리하듯 나 또한 "불안"이라는 지병을 다스리기 위해 달리기라는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인생은 거대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나는 미래를 낙관하는 사람이 아니다. 걱정과 불안이 기본값인 사람이다. 그 불안은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냥 안고 가는 거다.

불안이 찾아오면, "그래, 또 왔구나." 그러면서 운동화를 신는다.

아마 내일도 나는 걱정을 할 것이다. 수입 걱정을 할 수도 있고, 나이 드는 걱정을 할 수도 있고, 잘 풀리지 않는 일 때문에 잠시 마음이 무거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걱정이 미래가 아니라,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것을. 그리고 또 하나 안다. 그 이야기는 없어지지 않는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달리면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통장 잔고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불확실한 미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 안의 소음이 조금 잦아든다. 그리고 다시 지금에 충실할 수 있게 된다.

이제 내가 달리는 이유를 좀 더 명확히 알게 되었다.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안한 나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그래서 오늘도 운동화를 신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