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주째 아침 달리기를 하고 있다. 달라진 건 기록이 아니었다. 마음의 에너지가 바닥나면,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가장 못하게 된다는 것. 그래서 나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아침 달리기 6주차, 달라진 것들.

6주째 아침 달리기를 하고 있다.
오늘 가민을 열어보니 최근 4주 거리가 326km를 넘겼다. 처음으로 4주 300km다.
그런데 솔직히, 그 숫자가 별로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달리기 실력이 늘었는지도 모르겠다.
몸이 눈에 띄게 좋아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 분명 달라진 게 있다.
3주차 글에서 나는 아침이 문제가 아니라 저녁이 문제였다고 썼다.
6주가 지나고 보니, 달라진 건 기록보다 다른 곳에 있는 것 같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친다

대학교 때 공장에서 박스 포장 알바를 한 적이 있다.
그때는 몸이 힘들어서 힘든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몸보다 단순 반복이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컨베이어 벨트. 생각할 것도, 대화할 것도 없는 작업. 몸이 힘들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마음이 먼저 지쳐 있었다.
사무직도 비슷하다.
일이 힘든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람 때문에 힘들고, 회의 때문에 힘들고, 감정 때문에 힘들다. 하루 종일 참고, 버티고, 짜증을 삼키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의 에너지가 바닥난다.
그 에너지가 바닥난 날은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가장 못하게 된다.
나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아침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도 사실 거창한 게 아니었다.
살을 빼기 위해서도 아니고, 기록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마음의 에너지가 바닥나지 않도록.
짜증날 상황에서 조금 더 버틸 수 있도록.
나한테 관대해지고,
가족한테도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정말 그럴까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오래전부터 이런 이야기를 해왔다. 자기 통제력과 의지력도 근육처럼 소진된다고. 하루 종일 참고 버티면 결국 바닥이 난다는 것이다.
운동생리학 쪽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달리는 동안 뇌의 잡생각 회로가 잠잠해지고, 세로토닌과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소진된 마음이 조금씩 채워진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의 마음이 배터리처럼 단순하지는 않다. 달리기 한 번으로 사람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뛰고 나면 조금 괜찮아진다.
그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
달라진 건 기록이 아니라 몇 가지 장면이었다
월요일 아침은 여전히 싫다.
알람을 몇 번 끄고 일어난다. 팀장 얼굴 볼 생각부터 난다.
그런 날일수록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간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겁다. 300m. 500m. 숨이 차기 시작하면 머릿속은 조금씩 단순해진다. 안양천 냇가가 눈에 들어온다. 멀리 하늘도 보인다.
어느덧 아침에 뛰고 있는 내가 보인다. 아침 약속을 지킨 내가 조금 대견스럽다.

얼마 전 와이프한테 전화가 왔다.
"대현이 오늘 생일이라고 수학 과외 안 받겠대."
순간 짜증이 올라왔다.
'아니, 그럴 거면 미리 얘기를 해야지.' '선생님한테도 미안하고.'
저녁에 PC방에서 돌아온 둘째를 불렀다.
"왜?"
"장난해?"
"선생님한테는 전날 미리 말씀드려야지."
"원래는 그래야지."
그렇게 예의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끝났다.
예전 같았으면 거기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4050 남자의 화장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외출하기 전에 화장을 한다. 거울 앞에 앉아 하나씩 챙기는 그 시간. 화장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이 풍기는 그 느낌. 립스틱 색깔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를 챙겼다는 데서 나오는 자존감.
달리고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 거울 속 얼굴은 그대로다. 살이 빠진 것도 아니고, 주름이 없어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 스스로는 안다.
나를 챙겼다는 것을.
그리고 그 충만함은 마음속에만 머물지 않는 것 같다. 표정으로, 말투로, 여유로, 자신감으로. 어쩌면 분위기로 풍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중년의 멋은 얼굴보다 여유와 자신감이기에.

그리고 아직 마음에 여유가 남아 있는 저녁,
와이프와 안양천으로 나간다.
가볍게 달리고, 걸어서 돌아오는 길. 와이프 손을 잡는다.
아이들 얘기. 회사 얘기. 별것 아닌 이야기들.
와이프가 무덤덤하게 이런저런 얘기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특별한 건 없다.
그냥 평범한 하루가 평범하게 끝나는 시간이다.
오늘도 별일 없었다.
그래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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