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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달리기

화대종주 1편 - Finish line을 보지 못한 첫 대회

새벽 3시 출발, 오후 5시까지 14시간 완주. 그런데 저는 Finish line이 아닌 곳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날을 처음부터 다시 적어봅니다.

 

이제 대회가 끝난 지 3일이 지났습니다.

자꾸 속상한 생각이 문득문득 듭니다.

3일이 지난 지금도 뻐근한 다리가 이해되지 않지만, 그보다 마음이 더 너덜너덜한 것 같습니다.

새벽 3시에 출발해서 오후 5시까지. 14시간 안에 완주해야 했던 화대종주.

저는 천왕봉을 거쳐 대원사 방향으로 내려오다가, 날이 어두워질 것 같다는 생각에 중간 새재 갈림길에서 산을 내려왔습니다.

그때 시각이 오후 6시 17분.
총 15시간 17분.
그것도 Finish line이 아닌, 전혀 다른 곳으로 하산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14시간 안에는 Finish line을 통과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직도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날을 처음부터 다시 적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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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준비부터 출발까지는 완벽했습니다

이번 화대종주는 동호회 회장님, 잘 달리시는 쫑님, 그리고 저. 이렇게 세 명이 함께 출발했습니다.

육포와 링티, 간식 같은 부식도 미리 챙겨뒀고, 금요일 저녁 7시에 만나 햄버거를 두 개씩 챙기고 순댓국도 포장했습니다.

지방 휴게소는 음식점이 일찍 문을 닫는다고 해서, 밤 11시쯤 휴게소에서 포장해 간 순댓국을 먹었습니다.

밤 12시 20분쯤 대원사 Finish line에 차를 주차하고, 택시를 타고 화엄사까지 약 1시간 이동했습니다.

새벽 1시 30분쯤 Start line에 도착. 화장실도 다녀오고, 옷과 장비도 정리하고.

그리고 새벽 3시. 출발했습니다.

적어도 출발 전까지는 별문제가 없었습니다. 잠을 못 잔 건 조금 걱정됐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 잘 달리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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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노고단 올라가는 길

처음 약 2km 정도는 도로로 된 uphill이었습니다. 거기는 뛰어서 갔고, 이후 산길로 접어들면서부터 뛰다 걷다를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2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가빠진 숨이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다리를 들어 올리는 것도 말도 안 되게 힘들어졌습니다.

'어? 조금 쉬면 괜찮아지겠지.'

앞으로 멀어져 가는 쫑님을 보면서 회장님께 말했습니다.

"회장님. 먼저 가세요. 저는 조금 천천히 갈게요."

청남대 때와 마찬가지로 회장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니야. 같이 가. 정팀 속도에 맞출게. 힘들면 쉬었다 가고."

조금 더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아... 안 될 것 같은데요. 저는 천천히 갈게요. 먼저 가세요."

"그럼 100발자국만 가고 잠깐 쉬었다 가. 그렇게 하자고."

"네."

그렇게 수많은 100발자국을 거쳤습니다.

그리고 멀리서 쫑님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습니다.

"정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화이팅!"

그 화이팅을 한 열 번쯤 듣고 나니... 드디어 uphill이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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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노고단에서

조금씩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가지고 간 후레쉬를 가방에 넣고, 뭔가를 먹었던 것 같습니다.

땀에 젖은 바지에서는 계속 땀이 흘러내렸고, 그 땀은 양말을 타고 신발까지 젖어 있었습니다. 양말도 갈아 신었습니다.

"늦었어. 이제 출발해야 돼."

다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오르막이 시작되고... 15초도 지나지 않아 다시 숨이 가빠졌습니다.

'왜 그러지?'

오르막이 나올 때마다 왜 그렇게 부담스러운지. 시간도, 밝아오는 여명도, 옆으로 보이는 풍경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제 두 발과 바닥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힘이 들긴 해도, 그래도 14시간이면 충분히 들어갈 수 있겠지.'

앞에서는 쫑님이 계속 기다려주셨습니다. 뒤에서는 회장님께서 제 속도에 맞춰 계속 함께 해주셨습니다. 저는 그냥 바닥만 보고 계속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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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몇 번의 약수터와 산장

그때부터 제 머릿속에는 딱 두 가지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약수터까지 얼마나 가면 돼요?"
"이제 얼마나 더 가면 산장이에요?"

가민을 볼 여력도 없었습니다. 회장님이 말씀하시는 거리만 듣고, '조금만 더 가면 쉴 수 있겠네.' 그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저 때문에 속도가 나지 않았습니다. 트레일런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등산하시는 분들과도 속도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았습니다.

"어, 이대로 가다간 5시까지 도착 못 할 것 같은데. 지금부터 km당 17분 안에는 돌파해야 해."

쫑님은 앞에서 끌어주고. 회장님은 뒤에서 받쳐주고. 저는 uphill은 어쩔 수 없더라도 평지나 내리막은 최대한 달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결국... 세석 대피소에서 계산을 해봐야 했습니다. 쫑님은 먼저 가서 Finish line을 챙기기로 했습니다. 회장님은 저와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회장님. 어떻게든 천왕봉까지만 오르막이고, 그 이후부터는 내리막이니까 최선을 다하면 갈 수 있지 않을까요?"

"내리막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속도 내기가 좀 그래. 그래도 갈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한번 가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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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장터목 대피소

장터목은 천왕봉으로 가기 전 마지막 대피소입니다. 주최 측에서 딱 한 번 보급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미숫가루와 콜라도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그 정상 자체에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습니다.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었습니다.

14시간 안에 Finish line으로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거의 포기하고 싶던 순간 회장님께서 한마디 하셨습니다. 

"안 돼도 끝까지 한번 해보자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천왕봉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가까울 거라고 생각했던 천왕봉이 끝이 없었습니다. '이제 저기겠지.' 하면 또 한 번 올라야 했고. '이제 진짜겠지.' 하면 또 한 번 올라야 했습니다. 몇 번을 그렇게 실망하고 나서야... 겨우 천왕봉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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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천왕봉 이후, 드디어 하산 시작

이제부터는 내리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정말 내리막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고. 또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고.

"치밭목 대피소까지 4km니까 거기까지 가서 남은 햄버거 먹자고."

그런데 저 멀리 눈으로도 보이는 그 대피소가... 그 4km가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약하게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왼쪽 새끼발가락 부분은 까진 것처럼 계속 쓰라렸습니다.

"회장님. 까진 발가락에 테이핑 좀 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허기도 지네요."

"그래. 그럼 여기서 남은 햄버거 먹고 잠깐 쉬었다 가자고."

남은 햄버거를 먹고. 발가락도 테이핑했습니다. 그렇게 잠깐 쉬고 나니 조금 기운이 났습니다. 치밭목 대피소까지는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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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새재 갈림길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시간 안에 Finish line에 도착하는 건 이제 불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걱정이 생겼습니다.

산속을 가다가 날이 어두워지는 것. 그게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치밭목에서 1.8km를 더 내려가 새재 갈림길로 빠졌습니다. 거기서 3km만 더 따라가면 민가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3km가 그렇게 길 줄은 몰랐습니다.

내려가도. 내려가도. 계속 민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 지리산은 정말 끝이 없구나. 올라가는 것도 끝이 없고. 내려가는 것도 끝이 없구나.'

그렇게 한참을 더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산자락을 다 내려왔을 때, 마지막으로 흔들다리가 보였습니다. 그제야. 정말 산을 내려왔습니다.

먼저 도착해 계신 쫑님께 픽업을 부탁했습니다.

그렇게.

오후 6시 17분.

화대종주는 끝났습니다.

정확히는...

제가 생각했던 Finish line이 아닌 곳에서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