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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달리기

화대종주 3편 - 미완, 그리고 인정

 

 

오르막에 숨을 몰아쉬며, 억지로 발을 움직여 평지를 달리고, 내리막을 조급하게 내려갔습니다.

 

'그래 쉽진 않겠지만 14시간 안에는 갈수 있어'
'몸도 조금 지나면 회복되겠지'

 

달린 지 9시간이 지날 때까지도, 14시간 안에 Finish line을 통과하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제껏 절룩거리면서도 결국 Finish line은 통과해 왔기에.

하지만 오르막만 나오면 가빠지는 숨은 그대로였습니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습니다.
아무리 고통을 참고 가려고 해도, 몸 자체가 따라주지 않는 한계!!

마라톤 참가 이후 처음으로 Finish line을 통과하지 못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결과!!

 

살다 보면 어정쩡하게 끝나는 일들이 있습니다.

내가 원한 결말은 아니었는데,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서 어쩔 수 없이 끝나는 일.

반대로, 내가 특별히 잘해서라기보다 상황이 좋아서 운 좋게 마무리되는 일도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일은 혼자 시작하고 혼자 끝내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있고, 상황이 있고, 운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이 잘못되면 핑계 댈 것도 많습니다.

 

'상황이 좀 안 좋았어.'
'누가 조금만 도와줬어도.'
'운이 없었지 뭐.'

 

그런데 달리기는 조금 다른 거 같습니다.

물론 날씨도, 컨디션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얼마나 준비했는지. 얼마나 훈련했는지. 그날 내 몸이 어느 정도까지 버틸 수 있는지. 그 결과는 꽤 정직하게 나옵니다.

누가 대신 뛰어줄 수도 없고, 누가 내 기록을 만들어줄 수도 없습니다.

결국 내가 얻는 것도, 내가 잃는 것도, 내가 만든 결과입니다.

그래서 이번 화대종주에서 완주하지 못한 게 더 찜찜했던 것 같습니다.

· · ·
I. 미완

 

완주 실패.

역시나 그 찜찜함은 계속 남는 거 같습니다.

처음에는 다시 한번 참가할까 고민했습니다.

다시 화대종주에 도전해서, 이번에 남은 찜찜함을 끝내버릴까.

그런데 또 한편으론,

대회 운영도 마음에 들지 않고, 1년을 기다린다는 게 뭐해서,

굳이 그 대회가 아니라 다른 비슷한 대회를 찾아도 되는 건 아닐까.

'다시 화대종주를 해야 하나. 아니면, 다른 대회를 찾아야 하나.'
II. 근데, 그 찜찜함은 도대체 뭘까?

 

다음 대회를 완주하면 이 찜찜함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생각하다 보니, 그것보다 조금 더 근본적인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찜찜함의 정체는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그날, 내 몸이 화대종주를 완주 할 수준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100km도 두 번 뛰었는데, 아무리 힘들어도 14시간 안에는 들어오겠지.'

 

근데 그러지 못했고, 계속 원인이 뭘까? 고민했습니다.

왜 그렇게 퍼졌을까. 뭐가 문제였을까. 대회 준비가 부족했던 건 아닐까. 수면이 부족해서였을까. 보급이 문제였을까.

계속 이유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결국 답은 간단했습니다.

'화대 종주를 14시간 안에 들어올 몸 자체가 아니었던 것'

그게 전부였습니다.
III. 인정

 

이렇게 생각하니, 그동안 그렇게 찜찜했던 마음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습니다.

실패했기 때문에 아니라, 그 결과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해서 찜찜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된다고?'

 

내가 생각했던 나와, 그날 산에서 움직였던 내 몸의 수준이 달랐던 것뿐인데, 그걸 마주하기가 싫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걸 받아들이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그래. 지금의 나는 이 정도야.'
IV. 겸손하게

'다시 화대종주에 나갈지, 다른 대회에 도전할지?'

이제 조급함은 사라졌습니다.

지금 중요한 건 어느 대회를 다시 신청하느냐가 아닌 것 같습니다.

먼저 제 몸을, 그다음 수준까지 만들어 놓는 것.

충분히 훈련하고, 조금 더 성실하게 달리고,

그렇게 내 몸의 변화를 내가 직접 느낄 수 있을 만큼 만들어 놓는 것.

그리고 언젠가, '아, 많이 나아졌구나.' 그 말을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할 수 있는 순간을 만드는 것.

그게 지금 제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이번 화대종주는 Finish line을 보지 못했고, 14시간 안에 들어오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마음이 너덜너덜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생각이 조금 달라집니다.

그 첫 실패가
앞으로 조금 더 잘 달릴 수 있는 저를 만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겸손하게 그리고 조금 더 성실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