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리 못해도 14시간 안에는 들어오겠지. 100km도 두 번 뛰었는데...' 실제 달린 시간은 15시간 17분. 그것도 Finish line이 아닌, 산 어디쯤의 하산길 마을이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고, 당시에는 몸이 너무 지쳐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차를 타고 대회 골인지점에 가 보니, 마라톤 대회가 있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무언가 엄청 힘들게 했는데 아무것도 남은 게 없는... 그 텅빈 허함!!
어그적 거리며 근처 하천에 내려가 잠깐 씻고, 차를 타고 안양으로 향했습니다.


대회가 끝나면 뿌듯함과 '해냈다!!'는 성취감으로 며칠간 기분 좋은 상태가 유지되는데...
계속 '왜 퍼졌을까? 뭐가 문제였을까.' 그냥 문득문득 고민하게 됩니다.
게다가 대회 끝난 지 5일째인데, 아직까지 종아리가 뻐근한 상태고...
마음도 그런데, 몸까지 회복되지 않은 상태라, 5일째 달리기를 쉬고 있습니다.
그러니, 더 우울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자만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대회 한 달 전, 8시간 동안 안양 주변 산길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생각했고,
대회에 같이 참가하신 회장님께서 '10시간짜리 한 번 더 해야 해'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저만 빠지고,
평소처럼 술자리도 갖고, 식단도 그대로, 잠도 그대로.
뭐 하나 긴장감을 갖고 준비하지 않았던 게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마음 한쪽에는 이런 생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노고단까지 오르막을 한참 올라갈 때부터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평지를 뛰는 것과 산을 오르는 건 또 다른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날 왜 그렇게 무너졌는지 이해해 보고 싶어 AI에게 물어봤습니다.
2~3시간 오르막을 계속 오르다 보면, 근육이 필요로 하는 산소를 심폐가 따라가지 못하는 시점이 옵니다.
이걸 젖산 역치 초과라고 해요.
이 순간부터 근육은 산소 없이 에너지를 만들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젖산이 쌓입니다.
1~2분 쉬어봤자 소용이 없어요. 젖산을 제거하려면 최소 5~15분 이상이 필요한데, 조금 쉬고 다시 오르막을 시작하면 15초도 안 돼서 다시 무너지는 겁니다.
거기에 수면 부족, 새벽 출발 후 2~3시간이 지나면서 글리코겐까지 바닥나기 시작했으니, 이 두 가지가 겹치면 경험 많은 러너도 속수무책이에요.
100km 울트라는 평지 위주라 이 문제가 덜합니다. 하지만 산악은 달라요. 평지 달리기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오르막에서 쓰는 근육과 심폐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준비가 달랐어야 했어요."
답변을 듣고 나니 조금 납득이 되었습니다. 평지와 산악은 준비 방식이 달랐어야 했다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건강 때문에 달리기를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괴롭거나 스트레스 받으면 유독 더 달렸던 것 같습니다.
근데 달리기는 누구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더군요.
누가 대신 뛰어주는 것도 아니고, 누가 내 기록을 만들어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내가 움직인 만큼, 내가 준비한 만큼, 결과가 나옵니다.
온전히 나만 움직이면 되는 유일한 그 무엇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달리기에는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준비가 부족했던 것도. 산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도. 결국 제 선택이었습니다.
이번 화대종주는
깔끔한 실패.
그리고,
깔끔한 저의 완패.
너무 깨끗해서, 뭐라고 변명할 것도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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